30년, 그 이후
30년 이후 음악학교의 홈커밍을 맞이하여
“이 아이들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던간에..”
선교선생님의 기도를 들으니 뭉클했다. 지난 3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가며 또 지금의 내모습을 돌아보았다.
내 주변에 보이는 동창들은 모두 다 깔끔하고 빛나는 외모에 부티가 났으며 나름 성공적으로 보였다. 동창회는 잘나가는 사람들만 나온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조심스레 찾아드는 반가운 마음에 몇몇과는 대화도 하고 번호를 교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낯설고 서먹하여 다가가기 주저하게 된다. 이미 다 큰 성인이 되었고 밖에서는 존경과 존중을 받는 유명인들도 있는데 반말을 해 대는 것이 어색했지만 안 하는 것은 더 어색했다. 나를 기억해 주는 선생님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었다. 난 그닥 존재감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왜 그 먼 곳까지 갔던가? 그리 반가운 벗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혹여 30년전의 흔적속에서 지금 내 삶의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기를 고대했을까? 마음을 짓누르는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한낱 희망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에서였을까?
하지만 나와 친하진 않았지만 그 풋풋했던 어린 시절 함께했던 그들의 존재가 벅차게 다가왔다. 그들의 인생도 나름대로 스토리가 있었을 것이다. 온갖 풍파를 겪었을 수도 있고 아님 순탄하게 빛나기만 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우리는 모두 이 학교에 들어온 이상 특별하다고 믿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삶은 나름 치열했는데 참으로 허무하기도 했다.
함께 만든 합창 동영상을 볼 때는 마음에 밝은 빛이 스며들어왔다. 음악의 힘일까?
선생님들은 이미 백발이 되신 분들도 있었고 또 고인이 되신 분들도 있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지금 상황이 어떠하든 그 3년동안의 삶 뿐만 아니라 지금의 역경들조차도 축복의 빛 아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기에 이 모든 것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이다. 자신의 악기와 하나가 되어 현을 켜는 그들의 모습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저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지 않고 열정적으로 풍랑을 헤쳐나가는 듯 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희망을 가져도 될까?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어디로 가야하나? 마음속의 번뇌는 여전하다.
어린시절부터 시작되었던 음악인으로써의 삶. 연습실이 지긋지긋했고 무대가 싫었으며 직업도 불분명할 뿐더러 어떤 때는 예체능이라 무시받는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새로운 세상을 찾고 싶었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한심하게도 이 방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연 끝이 있기라도 한 걸까?
단순히 생존하기 위한 삶을 넘어서 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충만한 삶을 향한 길은 어디에 있을까? 이 허무한 인생여정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고 어디로 가야할까.
어쩌면 인생 끝날까지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언제고 확신에 차고 만족스러운 기쁨의 그 때가 올 수 있을까?
행복은 선택일 뿐이라 깨닫고 기쁨과 감사와 태도를 가져보려 해도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나의 삶은 불확실하고 불안하며 실패자인 것만 같다.
하지만 나를 자책하고 비난하는 것을 이젠 정말로 멈추고 싶다. 나 자신을 더이상 괴롭히고 싶지 않다.
숨으려고만 하는 나를 보듬고 위로해주고 싶다. 미성숙하고 별볼일없고 수치스럽더라도 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삶다운 그 여정 한 가운데 있을 뿐이라고 괜찮다고 말이다.
맘에 들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참으로 많이 듣는 말이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옛날 내 심정이 어떠하든 상황이 어떠하든간에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할 때 그 악상에 내 감정을 충실히 이입하려 했던 것처럼,
지금 나는 희망을 선택한다. 행복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들처럼 밝게 웃어본다.
잘될꺼야, 잘하고 있어, 힘내..
되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