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정체성- 과연 스테레오타입은 존재할까?
나를 소개 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음악’이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해왔고 중학교 때부터 예술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였다. 음악학교만 국내에서 10년, 해외에서 5년을 다니며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공부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연주와 강연, 교육 및 연구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음악보다는 다른 것들에 더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심리학이나 철학을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한다. 깊은 영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 인문학을 통해 전인적인 교양을 쌓기를 원한다. 알아야 할 것들과 경험할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나는 늘 곁길로 빠진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음악 너머의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런 나에게 스스로 질문한다. 음악은 내가 가야 할 길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 나의 천직과 소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다른 길로 가려 하면 왜 자꾸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게 되는 걸까? 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음악가의 스테레오 타입이 있을까?
얼마 전 어떤 성악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너무 철두철미해서 예술가 같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자신은 예술가라고 했다. 계획적이지 않고 즉흥적인 모습이 더 예술가답다는 것이다. 과연 음악가나 예술가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존재하는 걸까?
예고 다닐 적에는 일반고 다니는 친구에게서는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예고생 같지 않아.’ 이 말에 함축된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나는 다른 예고생과 다르게 얌전하고 착하고 순하다는 것이다. 칭찬 아닌 칭찬이었다. 그 당시 예술고등학교 다니는 학생 중 개성이 강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특출난 일부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예고생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이를테면 자기주장이 강하고 안하무인으로까지 보이는 거침없고 끼가 넘치는 모습 같은 것 말이다.
사실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그 사람의 일이나 직업은 당사자의 인성과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음악은 전공 분야에 따라 다른 특성을 보인다. 예를 들어 피아노나 지휘 등 큰 스케일의 음악을 한다면 좀 더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해야 할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서의 관현악과는 경쟁심리가 더 강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정한 모습들을 음악 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틀에 끼워 맞출 수 있는 걸까? 그래서 그것에서 벗어난 사람은 진정한 음악가나 예술가의 반열에는 들 수 없는 걸까?
모방과 학습이 만들어낸 음악가의 전형
사실 나는 그 반대를 의심한다. 음악가나 예술가임을 증명하기 위해 전형적인 모습으로 여겨지는 것을 모방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설사 그것이 진짜 자기 모습이 아니라 해도 마치 예술가가 되기 위한 훈련으로 이를 합리화한다.
입시생들을 가르칠 때 어떤 학생들은 그런 겉모습에 연연하는 것 같았다. 물론 입시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자기 암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조차도 예술가의 낙인을 얻기 위해 모방한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이기 위해 규정을 무시하고 윤리 의식도 저버린다면? 혹은 자신의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모습은 어떤가? 그리고 그것이 예술가에게는 허용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아닌가?
한때 미투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연극계와 체육계, 법조계 등 특정 집단이 더 도마 위에 올랐었다. 그들의 그런 분위기는 직업적인 특성에 의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래로 된다는 묵인이 만든 인재는 아니었을까?
팔방미인형 음악가들
사실 생업이 음악이 아니어도 탁월한 기량을 선보이는 음악가들이 있다. 예를 들어 스탠퍼드 대학에서 독일 문학과 언어학을 배우고 독일어 교사로 일하는 존 나카마쓰는 1997년 국제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하였다.
일본 도쿄대 공대생 출신 피아니스트 스미노 하야토(28)는 2017년 아시아 쇼팽 국제콩쿠르 금메달, 2018년 일본 피아노 지도자 협회(PTNA) 콩쿠르 우승, 2019년 리옹 국제 피아노 콩쿠르 3위를 수상했다. 특히, 2021년 제18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 준결승까지 올라가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또한 음악 학위가 없음에도 유명한 음악가들도 있다. 첼리스트 요요마는 하버드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했고 지휘자인 장한나는 하버드에서 철학학위를 받았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시절 스승인 러셀 셔먼 교수도 컬럼비아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Music in Liberal Arts
사실 외국에서는 저런 팔방미인형 음악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 우물만 파는 것을 보다 전문가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서양은 우리나라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것은 음악을 인문학의 하나로써 배웠던 역사 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음악을 자유 7과 안에 기본 교양과목의 하나로써 배워왔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 대학의 Liberal Arts, 즉 자유 학예로 이어져 오고 있다. 리버럴 아츠는 인문학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사실 교양에 필요한 모든 기초과목을 통칭한다. 그리고 이런 교육은 음악을 보다 큰 그림 안에서 학습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음악과 다른 분야들과의 협력과 융합, 그리고 응용이 가능해진다.
일반 중고등학교에서도 다양한 음악 활동을 깊이 있게 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되어 있다. 그러기에 음악을 전공으로 하지 않더라도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 안에서도 비전공자에게 전공자의 준하는 음악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인근 음악학교와의 조인트 학위프로그램 등이 그 한 예이다.
그러기에 음악학위가 없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배출해 내는 기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 음악은 도구이고 그것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정신임을 상기한다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르네상스맨으로서의 예술가들
이렇듯 다재다능한 음악가들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까? 때에 따라 달라지는 카멜레온 같은 정체성일까? 정작 이런 예술가의 모델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었다. 르네상스 맨이라 불리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르네상스 맨은 어느 하나의 직업 카테고리로 규정지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Vinci)는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해부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도 음악사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남긴 작곡가이자 중세의 수녀였지만 예술가, 작가, 언어학자, 자연학자, 과학자, 의사, 시인 등의 다양한 역할을 하였다.
요즘은 N잡러 라는 말도 많이 한다. 하나의 직업이 아닌 여러 직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바야흐로 르네상스 맨의 시대가 다시 도래한 것 같다. 미래 세대의 직업적 환경은 이런 N잡러의 모습이라고도 한다. 고도의 전문화에서 다시 통합으로 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고나 할까. 세상은 사이클 안에서 다시 돌고 도는 것 같다.
정체성이 아닌 개성의 시대
누군가 나처럼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말해주고 싶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는가? 그래도 누군가의 모습에 나를 끼워맞추지는 말자.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추구는 나를 성장시키고 결국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정체성보다 개성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