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음악가는 직업일까?
종교음악을 공부하다.
대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진로적성검사를 했었다. 사실 이 일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 때 지금은 매우 보편적인 MBTI 검사와 MMPI등의 검사를 했었다. 상담은 1년 넘게 계속되었는데 선생님은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셨다. 나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상담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졸업 후 진로를 정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나는 미국으로 오디션 여행을 떠났는데 몇 군데 피아노과로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종교음악으로 유명한 학교에 시험을 보았고 결국 그곳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당시 기독교였던 내가 하느님에 대해 늘 말하는 것을 주목하셨고 종교음악가가 되는 것을 추천하셨다. 하지만 그 당시 종교음악을 공부하고자 하는 대단한 열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나는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은 파산하였고 졸업 후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하지 못해 혼돈스러웠다. 사람들에게도 실망하여 떠나고 싶었다.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만 했던 것이 너무 답답하여 새로운 돌파구도 필요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학교는 내게 장학금을 많이 주었다. 지역적으로도 지인들이 많이 사는 뉴욕과 가까운 뉴저지에 있었다. 돈을 벌면서 공부해야 하는 고학생이었기에 이런 여건들도 중요했다. 그렇게 나는 미국 뉴저지에 있는 합창학교에서 종교음악과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그 어렵다는 HONORS도 받았다.
미국의 교회음악감독 (Music Director)
그 학교는 교회음악감독 즉 Music Director를 양성을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였다. 우리나라는 음악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일한다는 것은 봉사의 개념이지만 서양은 오래전부터 교회음악가라는 직업이 있었다. 바흐를 비롯한 서양의 많은 유명한 음악가들이 교회음악감독 내지는 오르가니스트였다. 교회는 음악가들을 고용하고 그들의 생계를 보장했다. 나는 종교음악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합창단에 참여하고 음악감독 및 반주자로서도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미국은 대형 교회의 경우 지휘자와 반주자 따로 고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교회들이 건반주자 한 사람만을 고용한다. 유럽은 오르가니스트 한 사람이 여러 교회들을 감독하는 종신 음악감독직인 칸토린(Kantorin)이 있다. 당시 내가 일했던 미국교회에서도 나 혼자 오르간 및 피아노 반주를 하고 성가대 지휘까지 했다. 외국인 학생 신분이었고 주중 한번 연습과 주일 한번만 갔기에 Part time job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보조 반주자로 있었던 큰 성당에서는 full time 미국인 음악감독이 있었다. 그는 피아노와 종교음악을 전공하였고 오르간도 치는 사람이었다. 성당은 평일에도 미사들이 많았다. 대부분 그가 반주했지만 새벽미사는 일반적인 근무시간이 아니었으므로 보조 반주자를 고용하였다. 그리고 부활이나 성탄 등 큰 행사에서는 지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 반주자에게 반주를 맡겼다. 보조 반주자로 일한 나는 시간에 따라 페이가 지급되었고 추가로 리허설이나 미사반주를 하게 되면 그에 따른 엑스트라 페이를 받았다.
한국교회의 음악가들에 대한 처우
하지만 한인 성당과 한인 교회는 같은 미국내에서도 분위기가 달랐다. 우선 대부분 지휘자와 반주자로 나누어져 있었고 전업으로 고용된 음악가는 없었다. 또한 약속한 시간 이외에도 나와서 무급 반주봉사를 하길 원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메인 지휘자나 반주자가 페이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무급이라 하여도 지휘나 반주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교회에서 반주나 지휘를 한다는 것이 직업이라기보다는 봉사의 개념이 더 크다. 하지만 외국에서 무급으로 교회음악가를 구하려 한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자신의 재능과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성당 내의 전업 반주자의 필요성
사실 개신교는 굳이 full- time 건반주자를 고용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성당은 상황이 좀 다르다. 성당은 주말 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미사들이 많다. 그리고 개신교는 오르가니스트와 피아니스트를 따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성당은 한 사람이 다 한다. 하지만 외국처럼 건반주자를 월급을 주고 고용하는 대신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반주를 한다. 보통은 성가대 반주자만 소정의 봉사료를 받고 나머지 미사들은 여러 명으로 꾸려진 반주단에서 무료 반주 봉사를 한다.
하지만 반주단 안에서도 크고 작은 마찰들이 있다. 그들도 음악하는 사람들이고 전례도 일종의 무대이기에 예민할 수 있다. 더군다나 오르간은 큰 소리의 특성으로 인하여 실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작은 실수에도, 사람들의 무심코 던지는 피드백에도 반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전공자와 비전공자 사이에서,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또는 발페달 되는 사람들과 안되는 사람들 사이에 자존심 싸움도 있는 것으로 안다. 또한 교중 반주자만 누리는 여러 특권들에 대한 반감이나 사심으로 반주자들 사이에 위화감도 조성될 수 있다. 교중 반주자가 반주단에 속해있다면 서로 이해와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의견과 이해관계가 제각각일 수 있어 지속적인 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또 대부분 집에 오르간이 없기 때문에 성당에 한 두개 밖에 없는 오르간도 나눠쓰며 연습해야 한다. 하지만 성전에서 오르간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교회 내 스케줄이나 기도하는 사람들로 인해 제한적이다. 같은 시간에 연습하러 왔다가 마주쳐서 헛걸음 하거나 시간을 정한다 해도 강제적이거나 일반 연습실 같이 시스템화 되어 있는 것도 아니므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 오르간 메모리도 나누어 써야 한다. 메모리가 몇 백개 이상 있는 오르간이라면 상관없지만 열 개 미만이고 반주단 숫자도 그 정도 된다면 적절하게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메모리 배정을 못 받을 수도 있다. 혹 실수로 다른 사람의 메모리를 지우게 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또 같이 쓰는 오르간이므로 앞에 사람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있다면 다음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며 치우게 된다.
이렇게 여러 명의 반주자가 성당내에 공존한다면 갈등의 불씨가 있다. 한 사람에게 일임하는 것이 교회를 위해서도 혼란을 없애고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종교음악가가 된다는 것
한때는 종교음악을 하는 것이 나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직업으로써 종교음악가가 되는 길은 험난해 보인다. 우리나라 교회나 성당에서 전업으로 음악가를 고용하지도 않을 뿐더러 특히 건반주자들의 위상은 지휘자보다 낮게 저평가 되고 있다. 우리도 언젠가 서양의 교회들처럼 교회음악감독이라는 직업이 생길지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교회음악가들이 생계를 위해 외부활동에 기웃거리지 않고 교회음악의 발전에 더 이바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