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깨우는 Bach의 음악, 그리고 글렌 굴드
아침에 들을 수 있는 음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침은 고요한 시간이면서도 모든 것이 일어나고 소생하는 시간이다.아침이 오기위해 태양은 빛을 비추고 새들은 노래한다. 모든 감각은 깨어날 준비를 한다.
아침을 깨우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면 아이러니 하게도 난 J.S.Bach의 Goldberg Variation을 선택하겠다.
아이러니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 곡이 불면증에 시달리던 백작을 위해 작곡 되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즉 자장가인 셈인데 나에게는 도리어 아침을 깨우기에 훌륭한 음악같이 느껴진다
처음과 마지막 아리아 두개와 30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이 곡의 테마는 불안한 마음을 고요하게 진정시키는 듯한 침착함이 깃들어 있다. 다분히 명상적인 선율은 조용하지만 설득력이 있다. 조용한 테마를 시작으로 화려한 기교적인 곡과 다시 차분한 명상조의 변주가 대조를 이루며 곡 전체를 흐른다. 이런 구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빵빠레를 울리는 듯한 활기찬 곡들보다는 적절하게 뇌의 자극을 주며 거부감없이 일어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사실 자기전과 잠에서 막 깰 때의 뇌파는 비슷하다고 한다. 바로 수면과 깨어있는 상태의 중간상태인 <세타파>이다. 그런면에서 자장가와 일어날 때 듣는 음악은 같은 곡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골드베르그 변주곡 연주에 있어서 글렌 굴드(Glen Gould)의 연주는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무인우주선인 보이저호에 실린 <지구의 소리> 음반에 그의 바하 평균율 연주를 포함시킬 만큼 바하의 해석에 있어서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전문가인 그는 사실 이 곡의 녹음으로 인해 무명에서 일약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대위법적인 다성 음악에서 이상을 찾으려 했고 피아니스트의 대표적인 레파토어라 할 수 있는 쇼팽 슈만 리스트 등의 낭만음악을 기피하였다.
그의 해석은 결코 정통적이거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그의 삶도 수없이 기이한 행동들로 인해 사람들에게 회자되곤 하였다.
세계 무대를 종횡무진하던 그가 돌연 30대초에 무대에서의 은퇴를 선언한다. 청중앞에서의 연주는 고통뿐인 사기극이라는 말과 함께 그 이후 다시는 공개연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녹음실에서 완벽한 소리를 찾는 은둔자의 삶을 선택했다.
피아니스트라면 피할 수 는대를 과감하게 저버린 그의 결단이 나에겐 이상하게도 위로가 된다. 나 또한 얼마나 무대에서 도망치고 싶었던가. 음악을 그만두고 싶을만큼 두렵고 싫지 않았던가.
무대에 선다는 것이 어떤 때는 사람들의 서슬퍼런 시선속에서 도마위의 생선처럼 난도질당하는 듯 하였고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을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내보여야 하는 수치심과 싸워야했다. 외적으로는 그럴 듯 하게 치장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 하지만 때론 서커스단의 원숭이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음악을 선사함으로써 그들과 교감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무대는 예측 가능하지 않고 피하고 싶은 두려운 현실인 것이다.
감히 나를 그와 같은 대가에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무대에 서는 연주자라면 느꼈을 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다시 그의 독보적인 연주로 돌아가 본다면 그가 들려주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물론 정통적인 바하의 해석과는 거리감 있는 속도에 낭만음악가들이 강조하는 음색의 색채감도 크게 없다. 하지만 듣고 있으면 그의 정갈한 연주에 마음이 정화된다. 결벽증과 신경증에 시달렸던 그가 자신을 잠재우기 위해 혼신을 다해 갈고 닦고 연마한 연주는 비슷한 성정을 가진 나에게도 편안함을 준다. 더 이상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완벽한 음악안에서 쉴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다시 한번 이 곡을 녹음했다. 좀 더 느리고 사색적인 첫번째 연주와는 사뭇 다른 해석의 연주였다. 어떤 이는 그의 인생을 골드베르그 변주곡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의 연주자의 커리어가 이 곡의 녹음과 함께 시작되었고 그의 삶 또한 이 곡을 마지막으로 마감했으니 말이다. 마치 아리아로 시작되어 찬란한 변주들을 지나 다시 아리아로 끝나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에 맞춘 듯한 삶이다.
개인적으로 아침에 듣기에는 속도감있는 1955년 녹음반이 더 나을 듯 하다.
그가 추구하였던 음악적 이상이었던 복잡한 대위법의 사슬속에서 문제를 명료하게 풀어가는 희열을 느끼며 아침을 상쾌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